top of page
IMG_6420.jpg

풀잎들

-전솔비

 그건 평소보다 흥겹고 들뜬 분위기의 광장무였다. 광장에 걸린 그녀의 그림 주위로 붉고 푸른 조명이 비치자 하나둘 춤을 추러 사람들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예상했던 시간보다 더 오래 사람들은 떠나지 않았다. 통제 불가능한 춤바람, 도무지 멈추어지지 않는 몸짓들 속에서 그녀는 스산한 온기를 느낀다. 간격을 두고 기댄 듯, 포개어진 듯, 휘청이는 듯, 휩쓸리는 듯, 흔들리는 사람들. 그것은 함께 있다고 따뜻해지지 않는다는 걸 이미 알면서도 서로에게 기대는 몸짓이자, 이 모든 것이 끝난 후 다시 혼자가 되는 시간을 예비하는 느린 몸짓이었다. 


  지난해 9월에서 12월 사이, 여름에서 겨울까지 중국 충칭의 황저우핑 지역에 머물게 된 이경희 작가는 이미 예상했지만 그럼에도 견디기 힘들었던 깊은 외로움과 단절의 시간을 마주한다. 그건 낯선 곳에서의 당연한 감정이기도 했지만 발을 다치게 되는 바람에 더 잘 느끼게 된 것들이기도 했다. 이동이 제한되고 다른 사람의 도움이 절실해지면서 점차 자신이 이방인이자 여성이며 언어적으로 소수자라는 사실이 더욱 크게 다가왔던 것이다. 타국의 낯선 공기 속에서 사라지는 듯한 감정을 간신히 벼려내며 그녀가 거리에서 보이는 광장무(일상적으로 공원이나 광장 같은 공공장소에서 집단으로 체조나 군무를 생활체육처럼 즐기는 중국의 문화)를 관찰하게 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불특정 다수가 모여 춤을 추는 그 자리는 누구나 아늑하게 숨어들었다가 언제든 떠날 수 있도록 준비된 기이한 피난처처럼 보였다. 


  낯선 이들의 춤에서 작가가 목격한, 어딘가 자신과도 일면 닮은 고독과 불안, 내적 욕망과 갈등의 풍경은 그날의 기억을 캔버스 가득 무성하게 자라난 풀잎들로 그려 넣게 된다. <광장무 1>과 <광장무 2>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 초록색 화면에는 전면의 풀잎이 뒷면의 사람들을 집어삼키려는 듯 위협적으로 피어오른다. 마음 깊이 심어둔 두려움을 토양 삼아, 그리고 외로움을 흡수하며 어두운 녹색의 풀잎들은 한창 길게 자라나는 중이다. 그것은 이면의 감정을 구체화하는 사물이면서 동시에 서로에게 기대어 포개진 채 흔들리는 외로운 신체의 형상화였다. 한편 울창한 풀잎들에 가려진, 아니 반쯤 합쳐진 것은 아무리 봐도 춤을 춘다기보다는 슬퍼하거나, 당황하거나, 다투거나, 분노하는 표정의 겨우 윤곽만 잡히는 얼굴들이다. 풀잎으로 가려지지 않는 몸짓은 자신과 불화한 채로 존재하며 그저 거기 있을 뿐이다. 그것은 <다친 다리 1>, <다친 다리 2>에서 풀잎에 베인 것처럼 푸른 멍이 들어가는 다리와 <난시>에서 풀잎 사이를 맴도는 여러 눈동자로도 이어지는데, 이는 부분화된 신체들로 풀잎의 자리에 흔적을 남기고 있다. 


  깊은 낯섦 속에 잠시 풀잎처럼 눕는 사람들, 아픈 발로 빠르게 춤추는 사람들, 모두가 혼자임을 확인하러 온 자리에서 빠르게 자라는 풀잎들과, 그 풍경을 바라보는 그림이 있다. 흔들리며 빠르게 춤추는 몸짓들이 어떤 일상적인 감정의 잔여였을지 ‘누가 그 속을 알까’ (영화 <풀잎들>의 대사) 그들은 마치 혼자 춤을 추기 위해 인파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았다. 광장의 모두가 누군가의 손을 맞잡고 있었다는 건 그날 찍힌 사진을 보고서야 알게 된 사실이다. 잡은 손의 주인이 어지러운 무보 속에서 계속해서 바뀌는 동안 어떤 이는 춤을 추는 열기를 일회적인 만남에서 비롯한 기묘한 따뜻함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마주한 눈동자에 점차 반쯤 붉고 반쯤 푸른 조명이 비치고 조금씩 빨라지는 몸짓에 어지러움을 느끼려는 찰나, 위태롭게 서로에게 간격을 두고 기대어 선 짙은 초록의 형상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풀잎들이 보였다.   

사진: 광장무 (廣場舞) -1>, acrylic on canvas, 170*162cm, 2019 (@오석근)

KakaoTalk_Photo_2020-12-29-01-29-02_edit

철거민의 삶에서 길어올린 영감

서울대저널 Vol.162 이예지

(중략) 이경희 작가는 그 표면을 들어내고 땅 아래로 파고들었다. 이 작가는 2110번지 옆집의 방바닥 한가운데를 팠다. 장판을 들어내면 바로 시멘트가 나올 줄 알았는데, 흙이 나와버렸다. 도시를 건설할 때 한꺼번에 많은 집을 짓느라 '공구리'를 충분히 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흙 다음 나온 스티로폼, 시멘트, 연탄재, 벽돌, 보일러 선이 들쭉날쭉하게 섞여있는 모습을 이 작가는 '땅의 이빨'이라고 불렀다. 이 작가는 "부정교합처럼 얽히고설킨 채 묻힌 땅의 이빨"을 통해 광주대단지사건 이후 그 땅을 거쳐간 삶의 흔적을 추적한다.

​사진: 이경희 <성남 땅> 작업모습(@오픈스페이스 블록스)

0331_도록(3차).jpg

면도날 : 균열의 틈새를 바라보는 날카로운 시선

안진국(미술비평)

안진국(미술비평)


“매끈한 공간은 끊임없이 홈이 패인 공간 속으로 번역되고 이 공간을 가로지르는 한편 홈이 패인 공간은 부단히 매끈한 공간으로 반전되고 되돌려 보내진다. 홈이 패인 공간에서는 사막조차 조직화되며 매끈한 공간에서는 사막이 퍼지고 확장되어 나간다. 그리고 이 두 가지가 동시에 진행될 수도 있다. 그러나 사실상 혼합되어 있다고 해서 권리상의 구분, 두 공간의 추상적 구분이 배제되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두 공간이 결코 같은 방식으로 교통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권리상의 구분이야말로 사실상의 혼합의 형식과 혼합의 방향(=의미)을 결정한다(매끈한 공간이 홈이 패인 공간에게 포획되어 감싸이는가 아니면 홈이 패인 공간이 매끈한 공간 속으로 융해되어 매끈한 공간을 펼치도록 해주는가?). 이리하여 동시에 수많은 질문이 제기된다.” (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1440년−매끈한 것과 홈이 패인 것」, 『천 개의 고원』, 새물결, 2001, p.907.)


   홈이 패인 빛과 매끈한 잔상 : 경외, 지배, 반투명

햇살이 비친다. 유리창에 부딪혀 여기저기 움푹 패인다. 움푹 패인 빛은 반투명한 그늘을 만든다. 전시장 구석에 닿는다. 태양은 서서히 동쪽에서 서쪽으로 옮겨간다. 움푹 패인 빛과 반투명한 그늘은 서서히 전시장의 벽면에서 바닥으로, 바닥에서 맞은편 벽면으로 매끈하게 미끄러진다. 빛과 그늘은 하루에 한 번씩 전시장 전체를 느릿느릿 지나간다. 이 서정적 풍경에 불쑥 끼어드는 ‘성조기’. 열세 개의 적백색 가로줄과 쉰 개의 흰 별이 박힌 미국의 국기. 빛과 그늘이라는 서정적 단어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이데올로기적 형상이 그곳에 등장한다. <움직이는 영토>. 이 작업은 이경희 작가의 신작이다. 과연 이 작업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움직이는 영토>는 성조기를 부각시킨 작품이다. 여기서 성조기는 그냥 성조기가 아니다. 작가가 미국 뉴욕에 체류 중 맥도널드에 들렀을 때 봤던 성조기다. ‘그’ 맥도널드에 붙어있던 ‘그’ 성조기. 그렇다고 이 성조기가 일반 성조기와 특별히 다른 건 아니다. 사실상 똑같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그가 그곳에서 ‘봤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그 본 것을 가져왔다는 사실이다. 그에게 ‘본다’는 것은 무척 중요하다.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인간은 눈으로 모든 형상을 볼 수 있지만, 모든 것을 그저 보고 있다는 것은 결국 아무것도 보고 있지 않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 ‘본다’라는 것은 단순히 눈의 기능을 다해 보고 있다 라는 것만을 말하지 않는다. 보는 것을 넘어 발견하고, 탐색하고, 알아 간다는 것. 보는 행위를 통해 대상을 삶의 범위로 끌어당기는 것. 가치와 의견을 만드는 것. ‘본다’라는 것은 더욱 많은 것을 요구한다.”(⟪이경희​ 개인전 : 비둘기는 어디에 있을까⟫의 작가 글) 작가에게 ‘본다’는 것은 발견하고 탐색하는 것이다. 그리고 기억했던 ‘봄’을 작품으로 풀어놓는다는 것은 새로운 가치와 의견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작가는 뉴욕의 맥도널드에서 이 성조기를 ‘봤다’. 그 순간 미묘한 감정의 물결이 내면에서 넘실거렸다. 그 감정은 언어화할 수 없는 감각적인 것이어서 발신자(작가)가 정확히 발화할 수도, 수신자(청자)가 정확히 이해할 수도 없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작가가 이 상황을 말했을 때, 나는 희미하게 피어나는 감정을 느꼈다. 한국인으로서 미국 국기인 성조기를 바라볼 때 드는 감정. 성조기가 그려진 유명 브랜드의 티셔츠와 모자를 볼 때, 성조기로 디자인된 휴대폰 케이스나 손가방을 볼 때, 할리우드에서 제작한 영화에서 펄럭이는 성조기를 볼 때, 광화문 광장의 시위대가 태극기와 함께 들고나온 성조기를 볼 때, 텔레비전 화면에서 한미연합훈련에서 나부끼는 성조기를 볼 때……, 그때그때마다 미묘하게 내면을 요동시키는 감정이 있다.

한국인으로서 성조기를 바라보는 감정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하는 것은 명확하다. 그 층위는 세대마다 다르고, 추구하는 이념마다 다르다. 상황마다 감정의 세기도 다르다. 한국전쟁을 겪은 세대와 날 때부터 세계화를 경험한 세대가 성조기를 바라보는 시각이 다르고, 주한미군 수호 진영과 주한미군 반대 진영이 보는 성조기에 대한 생각이 다르다. 하지만 성조기를 봤을 때 모두 공통적으로 내면에 동요하는 뭔가가 있다는 사실은 같다. 그렇다면 이경희는 어떤 시선으로 성조기를 바라봤을까? 알 수 없다. 작가는 성조기를 이념적 대상으로 삼지 않았다. 어느 하나의 시선을 강요하지 않는다. 그가 탐색하는 것은 이념이 아니다. 빙산의 일각이 아니다. 이념의 밑에 존재하는 빙산의 몸체다.

이경희는 뉴욕의 맥도널드에서 봤던 ‘그’ 성조기를 전시장으로 소환하여 재가공한다. 그는 성조기가 지닌 표피적이고 관습화된 생각의 너머에서 웅성거리는 사실들을 자신의 시선으로 재조직한다. 우리는 작가가 그 성조기를 봤을 때 느꼈던 감정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재가공하여 전시장에 실현(實現)해 놓은 상황을 통해 그 감정을 어렴풋하게 짐작할 수는 있다. 짐짓 짐작할 수 있는 이 감정은 ‘경외(동경)’와 ‘지배’, 그리고 ‘반투명’이다. 작가는 성조기를 밖이 훤히 보이는 전면 유리창으로 소환해왔다. 이 유리 벽면은 밖의 풍성한 빛이 찬란하게 비칠 뿐만 아니라, 지면에서 몇 계단 위에 있어 경외감을 느끼게 하는 공간이다. 이러한 유리 벽면에 붙어 있는 성조기는 ‘경외(동경)’의 감정을 갖게 하기 충분하다. 게다가 그 형식은 중세 교회 건축에서 활발히 사용되면서 “세상에서 가장 성스럽고 고귀한 예술”로 칭해지게 된 스테인드글라스를 떠올리게 한다. (작가는 대학원에서 건축스테인드글라스를 전공했다.) 이러한 위치와 형식을 지닌 성조기(<움직이는 영토>)는 우리에게 ‘동경’, 혹은 ‘경외’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특히, 스테인드글라스 형식은 이 작품의 성격을 형성하는 데 주요하다. 성조기를 투과해 전시 공간에 맺힌 빛 그림은 태양의 움직임에 따라 그 몸체를 키우거나 줄이며 전시 공간을 ‘지배’하듯 천천히 움직인다. 빛의 잔상이 만들어낸 성조기의 분신은 이렇게 유유히 전시 공간을 떠돌며 공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지배한다. 또한, 스테인드글라스의 ‘반투명성’은 바깥 풍경을 완전하게 보여주는 것도, 완전히 차단하는 것도 아닌, 그 중간의 성격을 구축한다. ‘반투명’은 공개와 가림의 사이에서 이 둘의 특성을 모두 취한다. 혹은 모두 버린다. 우리는 <움직이는 영토>를 통해 바깥 풍경을 볼 수 있다. 그러나 그 풍경은 불완전하다. 보여주는 것도, 안 보여주는 것도 아닌 모호한 상태를 만들어 놓는다. 이렇듯 ‘그’ 성조기를 소환하여 재가공한 작가의 방식에서 ‘경외(동경)’, ‘지배’, ‘반투명’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다면 작가가 <움직이는 영토>에서 이러한 감정을 유도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쩌면 이 감정은 한 개인으로서 작가가 뉴욕의 어느 패스트푸드 가게에서 성조기를 보며 느꼈던 감정인지도 모른다. 아니면 성조기로 상징되는 미국에 대한 한국인의 공통된 감정을 드러내려 했는지도 모른다. 자본주의의 메카인 미국을 여전히 ‘경외(동경)’하는 감정. 한국 사회 구석구석 미국제일주의가 ‘지배’하고 있다는 생각. 미국을 통해서 보는 ‘반투명’한 시선. 사실을 보여주지만, 진실을 감추고 있는 상황. 한국 사회라는 거대한 빙산에서 눈에 보이는 수면 위에는 성조기가 펄럭인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수면 아래에는 가늠할 수 없는 미국에 대한 미묘하고 복잡하고 거대한 감정의 몸체가 웅크리고 있다. <움직이는 영토>는 이 가늠할 수 없는 감정의 몸체 중 ‘이경희’라는 개인이 느꼈던 몇 가지의 감정을 가시화한 것으로 보인다. 이 감정은 보편적인 것(고정적인 것/홈이 패인 것)일 수도, 특수한 것(유동적인 것/매끈한 것)일 수도 있다. 한국인 개인은 한국인 전체에 포함된다.


    개인의 삶으로부터 : 이데올로기의 균열된 지점

사실 이경희는 초기에 지극히 개인적 서사에 친착했다. 초기 작업인 ⟪종암동프로젝트⟫(2014)나 ⟪인수에게-你⟫(2015)는 작가 개인의 기억과 연관된 장소에 집중한 작업이었다. 이러한 자신에 대한 몰입은 <경희여관>(2015)과 <흐릿한 꿈>(2015)에서 타인의 삶으로 시선을 확장하는 면모를 보인다. 동시에 사회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찌르던 사실(기억)을 다루면서 개인을 경유하여 사회 중심의 문제로 접근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 당시 발표했던 <이곳에 살기 위하여>(2015)는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아픈 기억을 개인의 서사로 드러낸 작업이고, <ABCD>(2016)는 삶이 부서진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안는 작업이었다. 더불어 <가엾은 박쥐여>(2016)와 <이 바닥(어서오십시오)>(2016)를 통해 작가는 한국의 정체성이 병리적 현상으로 드러내는 상황을 추적했다. 이러한 변화의 경로로 알 수 있듯이 이경희의 작업은 지극히 개인적 범주에서 타인의 삶으로, 다시 사회적 기억으로 그 범위를 확장해 나갔다. 그리고 현재는 거대 이데올로기의 균열된 지점을 찾아 파고드는 모습을 보인다.

사건을 먼 거리에서 조망하며 ‘그럴 것이라는’ 추측, 혹은 ‘그러길 바라는’ 기대가 빚어낸 신념은 이데올로기로 직조된다. 이러한 이데올로기에는 개인의 현실과의 괴리감이 존재한다. 여기서 이데올로기의 균열이 생긴다. 이경희가 파고드는 것은 이데올로기와 같은 거대 서사(grand narrative)가 아니라, 균열과 같은 미시 서사(micro narrative)다. “나의 작업은 사회 속에서 개인의 문제를 조명하여 가장 변두리에 위치한 개인의 삶으로부터 사회 중심의 문제를 지적하고자 한다.”(작업노트)라고 밝혔듯이, 작가는 개인의 삶에 친착한다. 그가 친착하는 삶은 “사회 중심의 문제를 지적”할 수 있을 만큼 의미 있는 이데올로기의 균열 지점이다. 작가는 그 균열을 비집고 들어가 추측과 기대가 아닌, 개인의 현실과 대면한다. 개인의 삶 속에서 마주한 현실에는 당위도, 신념도, 이념도 보이지 않는다. 그가 대면한 현실에는 이미 이데올로기의 간판은 불탔고, 타다만 귀퉁이만 조금 남아 있었다.

작가가 마주한 이러한 현실을 가장 잘 드러난 작업은 바로 한국전쟁 이데올로기의 균열 지점을 탐색한 작업이다. 군대의 주둔(특히 미군의 주둔)과 인근에 거주하는(했던) 일반인과 미군과의 미묘한 관계, 그들의 감정을 다룬 작업이다. 이러한 작업으로 ⟪No U.S Army there⟫(2016), 「경기북부마을아카이브프로젝트-연천 신망리」의 <No army there−Sinmangri> 및 <신망리 간판들>(2017), ⟪U.S. Army there⟫(2019) 등을 들 수 있다. (대상은 다르지만, 이와 유사한 성격의 작업으로는 ‘콸콸’이라는 시각예술 듀오[서효은, 이경희]를 구성하여 진행한 「월미도프로젝트」[2017~]가 있다. 이 작업은 전쟁, 식민, 이주의 역사를 가진 월미도 지역이 유흥도시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하는 프로젝트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 있는 작품이 바로 이번 신작 <움직이는 영토>라 할 수 있다.


    한국전쟁 이데올로기에 생긴 균열의 틈새에서 살아가는 개인

들뢰즈(Gilles Deleuze)와 가타리(Felix Guattari)는 『천 개의 고원』에서 유목적 공간과 정주적 공간, 전쟁 기계가 전개되는 공간(유동하는 공간)과 국가 장치에 의해 설정되는 공간(정지된 공간)을 전자는 ‘매끈한 공간’으로, 후자는 ‘홈이 패인 공간’으로 명명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사실상 혼합되어 있다고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두 공간은 권리상 구분되어 있고, 이 구분이 혼합의 형식과 혼합의 방향(=의미)을 결정한다고 말한다. 그로 인해 수많은 상황이 도래한다. 

유비적으로, 정주적 공간, 즉 ‘홈이 패인 공간’은 이데올로기라고, 유목적 공간, 즉 ‘매끈한 공간’은 개인의 현실이라고 볼 수 있다. 개인의 현실은 상황에 따라 늘 움직이는 반면, 이데올로기는 당위를 설정하고 좀체 움직이지 않는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매끈한 공간’과 ‘홈이 패인 공간’이 혼합되어 있다고 말했듯이, 이데올로기와 개인의 현실도 혼합되어 있다. 상황에 따라 변하는 개인의 현실 속에도 여전히 이데올로기가 작동한다. 개인의 현실이 이데올로기의 내부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가 하면, 개인의 현실에서 엇나가 있는 당위(이데올로기)의 비현실성을 현실에 맞추기 위해 뒤틀기 때문에 이데올로기에 균열이 생긴다. 우리가 보는 형상이 균열을 가진 이데올로기 덩어리인 이유다. 

우리나라에서 뒤틀리고, 어긋나 있는 주요한 현장은 바로 한국전쟁 이데올로기다. 이 이데올로기의 주요 구성 인자는 ‘반공’과 ‘정의의 수호자로서 미군’이다. 이 강력했던 이데올로기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지난 지금 주한미군 철수와 주한미군 수호로 나뉜 세력이 서로 대립 양상을 보일 정도로 큰 균열을 가지고 있다. 그 균열을 봉합하기 위해 주한미군 주둔을 점차 감축시키고 있지만, 이 때문에 새로운 균열이 진행되고, 그 균열들의 틈새에서 개인은 기이한 현실을 살아가고 있다.

이경희는 경기 북부 ‘동두천’ 미군기지 주변의 유흥지역에서 한국전쟁 이데올로기에 생긴 균열의 틈새에서 사는 개인을 처음 마주했다. 2003년 한미정상회담 이후 한국정부는 경기 북부 및 수도권에 있는 미군부대를 평택 캠프 험프리 기지로 이전하기로 하면서 이 지역의 미군기지를 반환하는 계획을 추진했고, 그로 인해 미군은 떠났으며, 미군을 상대로 한 상업지구는 공동화 현상을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동두천은 2004년 주둔 미군 병력 50%가 이라크로 파병되면서 지역 경제가 휘청거리기 시작했고, 이후 미군 부대가 평택기지로 옮겨가면서 미군의 소비를 기반으로 형성된 산업구조는 순식간에 붕괴되었다. 이러한 맥락 속에서 2016년 이경희는 자신이 마주한 틈새를 ⟪No U.S Army there⟫으로 우리에게 보여줬다. 

이 작업은 인터넷 사이트와 홍보형 명함, 그리고 그 명함을 미군기지에 닿게 하기 위한 일련의 행위를 담은 영상으로 구성되어 있다. ‘No U.S Army there(미군이 거기 없다)’라는 작업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이 작업은 ‘미군의 부재’를 중심으로 그것이 파생한 문제에 집중한다. 그렇다고 국가적 차원이나 지방정부 차원에서 조망한 것이 아니다. 그 내부로 들어가 허덕이는 개인의 상황에 초점을 맞춘다. 이를 위해 작가는 미군이 사라진 동두천의 유흥지역에서 지역민의 목소리를 기록하고, 풍경을 사진으로 담으며, 분위기와 정서를 읽어나갔다. 그가 채집한 말들, “거기 서 있으면 손님 안 들어와. 거 아가씬지 아줌만지 몰라도 사진기, 허락도 없이 가게 사진 찍는 미국놈들 내가 여러 명 후려갈겨 놨지.” “신랑을 미국사람 만나면 미국가야지. 안 그래?” 등의 말들 속에는 여전히 미군에 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작가는 이 말들이 미군이 사라진 상황에서도 “여전히 할 말이 남아있는 사람들”이 발화한 “목적지 없는 말들”로 규정한다. 그래서 그는 이 말들을 미군부대에 전하기로 마음먹고, 부킹(booking, 예약) 사이트를 만들고, 유흥업소에서나 사용할법한 홍보용 명함을 배포한다. 이 명함에는 “이 슬픈 세상을 짊어진 남자(A man who has shouldered this sad world)”에게 “정성을 다하겠습니다”라는 다짐이 담겨 있다. 작가는 이 명함을 미군이 떠나버린 부대의 담장 너머로 던진다. 대부분 담장을 넘지 못한다. 설사 담장을 넘더라도 들어줄 이 없는 말들이다. 결코 목적지에 닿을 수 없는 말들. 이러한 작가의 행위는 동두천에서 여전히 사는, 이데올로기의 간판이 불탄 가게를 지키는 소시민의 모순적 상황을 드러낸다.

⟪No U.S Army there⟫가 ‘미군이 떠난 자리’를 다룬 작업이라면, 2017년의 <No army there―Sinmangri>는 폭을 조금 더 넓혀 ‘군인들이 지나간 자리’를 탐색한 작업이다. 하지만 이 작업도 ⟪No U.S Army there⟫의 연장선으로 읽힌다. 여기서도 미군이 중심에 있기 때문이다. 작가가 찾아간 경기북부의 접경지역 ‘신망리’는 수복지역으로 수복 이전에는 북한군 치하에 있었다. 그래서 인민군에 관한 기억이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미군이 주둔하여 미군에 관한 기억이, 미군 철수 이후에는 우리나라 육군이 배치되어 육군에 관한 기억이 남아 있다. 이렇듯 이곳은 인민군, 미군, 육군에 관한 기억이 중층적으로 병존하는 마을이다. 주민의 삶이 넓게 보면 전쟁과, 좁게 보면 군부대와 지속해서 연결되어 있는 곳이다. 이곳에서 작가는 미군(UN군)의 원조로 건립된 구호주택 100채에 관련된 주민의 구술을 중심으로 작업을 진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인민군, 미군, 육군이 마을 주민의 삶에 남긴 흔적을 함께 수집해 기록했다. 그리고 군부대로 인해 경기가 활발했을 때 제작됐던, 이제는 세월이 지나 빛바래고 닳은 간판들의 글자 테두리를 그대로 따와 원하는 색을 마음대로 덧칠할 수 있는 <신망리의 간판들>이라는 컬러링 북도 별책부록으로 만들었다.

앞서 밝혔듯이 신망리는 인민군, 미군, 육군이 차례대로 영향을 줬던 마을이다. 그런데도 작가는 ‘미군의 구호주택’에 집중했다. 이것은 그의 관심이 여전히 ‘우리나라에서의 미군’임 알려준다. 그가 탐색하는 영역은 좁게는 한국전쟁과 미군과의 사이에 끼어 있는 암흑 지대이고, 넓게는 한국전쟁의 기억 위에 형성된 미국의 형상이다. 여기서 그는, ‘미국은 고마운 나라’라는 미국제일주의 이데올로기가 우리나라에서 형성된 그 근원(미군 주둔, 미군 원조)을 마주하면서, 이 이데올로기가 개인의 차원에서 어떻게 발화되는지 탐색한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맨 처음에 이 문장을 제시한다. “잘들어야들리는노아미데어신망리” 그는 처음부터 자신이 채록한 말을 잘 들으라고 말한다. 그래야 들린다고 이야기한다. 잘 듣는다면 뭘 들을 수 있을까? 채록한 말 중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내가 이 동네 모르는 게 없지. … 옛날엔 여기 앞에가 미군 천지였어. … 장사하니까 얘기도 다 해봤지. 할아버지. 그럼 아는 미군있어요? 몰라. 그냥 미군이야. 미군은 그냥 미군이지.” 잘 들으면 들린다. “미군은 그냥 미군”이었다. 신망리 주민에게 미군은 성도, 이름도 없는 “그냥 미군”이었다. 이건 우리나라 모든 사람이 마찬가지 아닐까? 우리에게 미군은 개인이 아니다. 이데올로기 수준의 관념적 형상에 지나지 않는다. 개인은 없다. “미군은 그냥 미군”일뿐이다.

이경희는 이 ‘미군’이라는 관념적 형상에 모종의 이상함을 느낀 듯하다. 개인의 이름은 사라지고 집단적 기호만 남아있는 상황에 대한 기이함. 2019년 선보인 ⟪U.S. Army there⟫는 이런 문제의식을 표면화한 작업이다. 이 시리즈 작업은 작가가 한 명의 미군을 인터뷰하면서 그의 특성을 관찰하고 기억한 후 그 기억만을 바탕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작업이다. 작가는 이제 미군을 직접 대면하기 시작한다. 관념적 형상이 아니라 현실의 개인을 만난 것이다. 작가는 한 개인의 특성들, 그의 몸짓, 태도, 개인적 상황 등을 관찰하면서 “미군은 그냥 미군”이라는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이미지에 가려진 개인으로서 미군을 발견하려고 시도한다.

 이 시리즈의 첫 작업은 <You’re my best friend you know>다. 친근감 있고 활발한 남성 미군과의 인터뷰에서 시작된 작업이다. 이경희는 이 남성 미군과 인터뷰한 후 받았던 인상을 기초로 그의 형상을 손으로 그렸다. 그리고 미군의 홈페이지에 있는 전형적인 미군의 이미지를 흐르게 처리한 후, 손으로 그린 그의 초상을 그 위에 겹쳐서 작업으로 완성했다. 이는 정형화된 미군과 개인으로서 미군이 서로 다름을 형식적으로 드러내려는 시도라고 볼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다른 작업인 <Baby meal>에서는 거의 형체를 알 수 없는 이미지를 제시한다. 이 작업은 아이가 있는 여성 미군의 인터뷰에서 시작됐다. 여성 미군은 인터뷰하는 동안 줄곧 아이를 걱정하는 모습을 보였다. 제목이 ‘Baby meal(아기 식사)’인 까닭도 이 때문이다. 떨어져 있는 아이에 대해 걱정하는 여성 미군은 여느 엄마와 같은 모습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인터뷰에 집중하지 못한 모습을 보였고, 그의 얼굴은 기억에서 희미해졌다. 이러한 이유로 작가는 여성 미군의 형상을 온전히 제시하지 못했다. 형체가 희미하다. 이러한 개인으로서 미군의 모습들은 우리가 알고 있던 전형적인 미군과 확연히 다르다. 작가는 관념적 형상과 실제적인 개인의 삶이 어긋나 있는 지점을 보여줌으로써 선입견을 만들어내는 거대 이데올로기의 모순과 그 균열을 우리가 인식하도록 이끈다.

이경희는 최애 소설로 서머싯 몸(William Somerset Maugham)의 『면도날(The Razor’s Edge)』(1944)을 꼽았다. 이 작품은 사회 구조가 만든 상류 문화를 추구하는 개인들의 심리적 풍경과 그 길을 가지 않는 인물에게서 드러나는 구도자적인 삶의 모습을 풀어놓은 소설이다. 여기서는 성공이라는 거대 이데올로기 아래에서 여러 인물이 자신의 삶을 변주해가는 모습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이 때문일까? 그가 이 소설을 좋아하는 이유가 혹시 사회가 제시한 성공 이데올로기 안에서 복작대는 개인들의 다양한 모습 때문일까? 물어보지 않아 알 수 없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사회 구조와 개인의 삶을 주의 깊게 바라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경희는 추측과 기대의 신념이 직조한 이데올로기와, 이 이데올로기가 현실과 맞지 않아 뒤틀리며 발생하는 균열과, 그 틈새에 낀 개인의 심리적 풍경을 예리하게 바라보고 있다. 마치 면도날처럼 날카롭게. ■

사진:​제주현대미술관 출저

3.jpg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

2020.04 월간미술

(중략)타자에 대한 적대와 배제, 그것이 파생하는 소외와 낙인같이 일상에서 수없이 마주하는 폭력현상은 어디서 야기되는 것일까? 마치 거울을 보듯 타인에게서 내 모습을 발견하는 것처럼 '현재와 너무 멀지 않은 과거에서 우리의 현재 모습을 마주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 않을까?'라는 질문이 이 전시의 출발점이다. 이지유가 마주한 이재수에 대한 전설, 박정근의 4.3유족 인터뷰, 이경희의 미군 마을 주민 인터뷰와 같이 역사 속에서 떠돌았고 떠도는 말이 전시의 중요한 바탕이 된다. 인간적인 삶을 되찾기 위해 모든 것을 내던졌지만 기록에서조차 누락된 사람들, 평범한 일상을 일시에 빼앗긴 채 사회적 배제와 낙인의 시간을 감내한 사람들, 국가 정책의 주변부에서 극심한 의존성과 불일치가 혼재된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각별한, 작별한, 특별한>전은 서로 다른 시대와 장소가 교차하는 지점에서 흩뿌려질 뻔한 이야기를 통합적으로 살펴보는 데 주목한다. 사람은 언제나 자신의 속한 집단, 사회, 국가의 영향을 받으며 그 누구도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다. 그렇기에 현재도 역사 위에 서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누락된 역사를 다면적으로 보고자 하는 이지유, 소중하고 의미 있는 장소를 되찾아 준 박정근, 새로운 뿌리를 만들어가는 주민들의 일상에 컬러를 입히는 이경희 작품과의 만남을 통해 오늘날 우리 기억에서 잊혀진 이들의 자리를 마련하는 유의미한 환대의 시간을 갖게 되기를 바란다.

자료재공 제주현대미술관

2017 작가자료집_이경희작가님.jpg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는 먼지

안진국(미술비평)

 아서 단토는 “예술작품이 예술가의 의식의 외화라면 그것은 우리가 예술가가 본 것을 보는 것이 아니라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보는 것이다”고 말했다.(『일상적인 것의 변용』, 김혜련 옮김, 한길사, p.346.) 나는 이경희의 작업을 보면서 그가 세상을 보는 방식을 본다. 그는 자신을 찌르는 사실(기억)을 마음에 품고 오랜 시간 되뇌면서 그 기억 주위를 사유의 막으로 겹겹이 감싸 반짝이는 작업을 내놓는다. 마치 조개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온 이물질을 수백 겹의 외투막으로 감싸 결국 반짝이는 진주를 만드는 것처럼 작가도 그렇게 작업을 한다. 1살 때 할머니에 의해 서울로 ‘강제 이송’된 가족사는 30여 년이 지나 약간의 다른 내러티브를 가진 <종암동 프로젝트-종암동 머물기>(2014)와 <풍경소리 (Voice of landscapes)>가 되었고, 어린 시절부터 다른 사람이 되고 싶은 바람은 이런 환상을 머금고 꿈의 들판으로 갈 수 있는 <경희여관>(2015)을 만들어냈다. 이별과 사라짐, 그리고 흐릿한 기억에 대한 안타까움은 오랜 시간 마음 깊은 곳에 침전되어 <흐릿한 꿈>(2015)과 《인수에게-你》(2015)가 되었다. 2015년부터 이경희는 사회적인 측면에서 자신을 찌르던 사실(기억)을 다루기 시작하여, 2003년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2014년 세월호 사건의 아픈 기억을 품은 《이곳에 살기 위하여》(2015), 삶이 부서진 사람들을 하나로 끌어안는 <ABCD>(2016), 한국의 정체성이 병리적 방식으로 드러내는 현상을 추적한 <가엾은 박쥐여>(2016)와 <이 바닥(어서오십시오)>(2016), 미군과 미군기지, 그곳에 거주하는 한국인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다룬 <No U.S Army there>(2016) 등의 작업을 선보였다. 2017년에는 《Essay / Do extract for one essay》를 통해 잠재의식 속에서 작가를 감싸고 있던 ‘바다’ 이미지를 적극적으로 제시하는 모습을 보였다. 그리고 지금은 ‘콸콸’이라는 시각예술듀오(서효은, 이경희)를 구성하여, 전쟁, 식민, 이주의 역사를 가진 월미도지역이 유흥도시로 변하는 과정을 추적한 「월미도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전쟁 역사의 어긋난 지점을 단단한 언어로 말하고 있다. 더불어 개인 작업으로 2016년 독일 베를린 레지던시 기간부터 마음에 각인되기 시작한 ‘비둘기’에 대한 기억을 되뇌며 작가의 지난 삶에서 비둘기를 소환하여 그것을 겹겹이 감싸는 중이다. 아마도 멀지 않아 이러한 작가의 거듭된 사유가 단단하고 반짝이는 작업으로 세상에 등장할 것이다.

 FIN : 모든 희망과 욕망의 무덤(the mausoleum of all hope and desire)

보호관찰소에 갇혀 있는 앙트완은 체육활동 시간에 갑자기 철조망 담장 밑으로 기어들어가 관찰소를 탈출한다. 그는 쉼 없이 달린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다. 그가 그토록 갈망하던 그곳. 하지만 앙트완은 발목이 잠길 정도밖에 바다에 들어가지 못한다. 소년은 결국 뒤돌아서서 바다를 등지고 해변으로 걸어 나온다. 그리고 “FIN”. 영화 <400번의 구타(Les Quatre Cents[400] Coups)>(1959)는 이렇게 끝난다. 이 영화에서 부모의 무관심과 학교의 억압적 구조, 사회적 위선 등 사회적 폭력과 갈등을 겪는 열네 살 소년 앙트완은 끊임없이 자신을 가두는 공간을 탈출한다. 그리고 영화 마지막에서 자유의 공간, 해방의 장소처럼 여겨지는 바다에 도착한다. 하지만 바다는 앙트완에게 넘을 수 없는 한계, 실존적인 경계선이 되어 소년을 더 달리지 못하게 가로막는다.

이 영화는 이경희에게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작가는 2017년 상반기에 바닷가 근처에 있는 홍티아트센터(부산문화재단)에 입주하여 작업을 진행했다. 그는 그곳에서 그동안 자신의 심연에 침전되어 있던 ‘바다’를 흔들어 부유시켰다. 장소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작가에게 바다 근처의 레지던시는 바다를 뒤적거릴 수밖에 없는 필연적 요소가 되었으리라. 사실 바다는 작가의 삶과 맞닿아 있다. 작가가 태어난 곳은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제주도이고, (1살에 서울로 강제 이주되었지만, 성장하면서 개인적인 이유로 장기간 제주도에서 생활했다.) 성인이 된 지금은 바다가 가까이 있는 인천지역을 활동의 주요 거점으로 삼고 있다. (작가는 ‘콸콸’의 작업으로 「월미도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내면을 탐구하는 이경희에게 바다 작업은 어쩌면 언젠간 하게 될 작업이었는지도 모르겠다. 작가는 레지던시에서 수백 편의 영상을 봤다. 그 과정에서 바다에는 언제나 사람이 있음을 발견했다. 바다에서 사랑을 나누고, 전쟁을 벌이고, 난민으로 떠돌고, 살인하는 등 다양한 사람의 모습을 영상에서 보게 된 것이다.

이경희는 자신이 본 영상에서 바다 이미지를 추출하여 우리에게 제시한다. 그런데 작가가 제시한 바다 이미지는 바다의 색보다 더 새파랗거나 너무 검다. 작가는 윌리엄 포크너의 『음향과 분노(The Sound and the Fury)』(1929)에 나온 “너에게 모든 희망과 욕망의 무덤을 준다.(I give you the mausoleum of all hope and desire.)”라는 경구를 떠올리며, 바다를 ‘모든 희망과 욕망의 무덤’이라고 정의 내린다. (작가는 미국드라마 「워킹데드」에서 이 구절을 인용한 것에 큰 울림을 받았다고 한다.) 바다를 ‘세상의 끝’으로 보는 것이다. <400번의 구타>에서 소년이 갈망했던 바다는 결국 소년의 전진을 가로막는 경계선이었다. 바다는 소년에게 ‘세상의 끝’이었다. 그렇기에 소년이 바다를 등지고 섰을 때 “FIN(끝)”이 새겨지고 영화가 끝이 났으리라. 이경희는 이 장면을 주요하게 생각했다. 그래서 이 장면을 작업으로 가져왔다. 이것은 바다에 대한 작가의 태도를 알려준다. 이경희가 우리에게 제시하는 바다는 인간의 한계, 세상의 끝, 무덤이다. 실재적인 물리적 죽음뿐만 아니라, 은유적인 사회적 죽음을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공간인 것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이 죽음은 작가의 전시장에 있는 환등기처럼 오래되었고, 환등기 위에 놓인 한 장의 OHP 필름에 인쇄된 관련성 없는 두 장면처럼 맥락도 없고 우연적이다.

 삶의 제의(祭儀)

“의자 같은 경우는 … 사람과 비슷하게 생겼어요. 하지만 움직이지 않잖아요. 그래서 움직이지 않는 사람 같은 인상이 있어요.”(작가와 인터뷰 중) 이경희는 어떤 사물을 선택할 때도, 볼 때도, 촬영할 때도, 그릴 때도 그 사물에 묻어 있는 사람의 체취를 찾는 모습을 보인다. 너무 많이 앉아 주름지고 축 처져 있는 소파, 가볍게 휘날리기엔 너무 무거워 보이는 깃발, 네 발이 휘어 있어 앉으면 바로 주저앉을 것 같은 의자, 거친 그림자를 가진 깔끔한 유리병, 정돈된 보도블록 위에 오려 붙여 놓은 것 같은 공사 표시콘, 한쪽으로 밀려서 아무렇게나 모여 있는 폐박스들. 작가가 보여주는 사물들은 사람들의 남루한 삶을 고스란히 드러내는 느낌이다. 사물을 볼 때도 그의 시선은 사람을 향해 있다. 이처럼 이경희의 사람에 대한 애정은 작업 세계 전체를 관통하며 흐른다.

작가는 초라한 사람의 내부를 따뜻한 시선으로 매만진다. 특히, 리서치의 결과가 예술적 표현형식과 결합한 작업은 작가가 심리적으로 어떻게 사람을 끌어안는지 알려준다. ‘약속다방’의 주인이었던 한 여인이 아무 말 없이 홀연히 떠난 사건을 토대로 삼은 <흐릿한 꿈> 퍼포먼스에서 작가는, 떠나는 한 여인의 심정을 담아 약속다방에서부터 큰 도로까지 걸어가며 신발을 도로 쪽을 향해 내려놓았다. 그리고 다방으로 되돌아올 때는 여인이 다시 돌아오길 염원하며 내려놓은 신발을 다방 쪽으로 돌려놓았다. 마치 도로를 향한 신발들은 홀연히 떠난 여인의 발걸음처럼 느껴지며, 다방을 향해 돌려진 신발들은 그 신발들을 밟고 그 여인이 다시 약속다방으로 돌아올 것 같은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배경으로 기획된 전시 《이곳에 살기 위하여》에서도 작가가 섬세한 감정으로 사건을 다루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 참사를 직접적이고 선정적으로 드러내는 폭력적 표현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다. 그는 앞으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게 만들어 놓은 양철 통로를 설치하고 그 끝에서 개인의 분열된 기억과 책, 불과 물 등을 상징하는 장면이 교차하는 영상을 상영하여 참사에 대한 심리적 형상만 제시한다.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를 기억하는 이는 점점 좁아지는 양철 통로와 영상에 등장한 불타는 장면, 검게 그을린 여인의 손 등을 통해 그 화재 참사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 화재 참사의 기억과 영상 속의 물의 이미지, 물에 흠뻑 젖은 여인이 연결되면 안타까운 참사인 ‘세월호 사건’을 상기(想起)하게 된다. 특히 작가는 대구 지하철 참사와 세월호 사건과 전혀 관계없는 프랑스 초현실주의 시인 폴 엘뤼아르(Paul Eluard)의 시 <이곳에 살기 위하여(Pour vivre ici)>를 영상의 내레이션으로 넣음으로써 작업을 더욱 은유적으로 만든다. (이 시는 전시 제목이기도 하다.) 이 시는 “나는 불을 만들었다”, “나는 흐르지 않는 물속에 침몰하는 선박”, “피를 찢는 창백한 손”, “불의 한 방울이 차가운 물 위에 뜨고” 등의 구절을 통해 불과 물, 폐허, 피, 죽은 자, 눈물과 같은 초현실적인 이미지들이 제시되는데, 그것이 대구 지하철 화재 참사와 세월호 사건과 내적 연관성을 형성한다. 이렇게 이경희가 사회적 재난을 불러오는 방식은 (작가가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사람들, 특히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당사자들을 사려 깊게 배려하는 형식을 가지고 있다. (당사자들은 참사를 직접 재현한 모습만으로도 강한 심리적 충격을 받게 된다.) 작가의 사람에 대한 배려는 작업의 형식이 되어 나타나기도 하는데, <이곳에 살기 위하여>를 진행하며 메타 작업으로 제작한 <ABCD>에서 그 특성이 두드러진다. 이 작업은 입장과 상황이 다른 네 명의 사람이 전혀 소통되지 않는 자신의 이야기를 하다가 결국 하나의 총체적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형식의 영상 및 설치 작업이다. <ABCD>는 네 사람의 이야기가 교차하는 영상과 텍스트, 그리고 서로 다른 형태의 의자 조각들이 결합하여 하나의 의자를 구성하는 작품을 통해, 한 명 한 명의 객체가 지닌 특성과 그들이 구성하는 세계를 드러낸다. 이러한 형식은 우리에게 이경희가 사람들 한 명 한 명에게 사려 깊게 접근하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2016년 《격변! 미지로부터 코레아》 전시에서 선보인 <No U.S Army there> 명함과 홈페이지, 영상 작업은 작가에게 한국 전쟁과 미군의 개입이 우리에게 남긴 것을 추적하는 작업이었다. 이 작업에서부터 이경희는 대문자 역사보다는 전쟁의 잔흔에서 사는 소시민의 삶과 사회 구조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다. 작가는 <No U.S Army there>를 제작하면서 리서치한 ‘동두천’과 예술듀오 콸콸의 「월미도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한 ‘인천’, ‘마을조사’라는 다소 목적성 있는 사업인 「서부전선 DMZ 프로젝트」를 위해 리서치한 ‘연천 신망리’에서 서로 다른 방식으로 나타나는 미군과 한국인의 미묘한 역학관계를 발견하였다. 현재 작가는 이 다른 방식의 연유(緣由)와 파장, 그리고 변화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아마도 머지않아 이에 대한 사유가 겹겹이 쌓인 단단하고 반짝이는 작업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경희의 작업은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는 먼지와 같다. 우리는 늘 먼지 없는 무균실을 꿈꾼다. 하지만 그곳은 사람이 ‘사는’ 공간이라고 할 수 없다. 사람의 공간에는 먼지가 존재한다. 먼지는 모든 곳에 닿을 수 있다. 지금도 이경희의 작업은 사람 사는 곳에서 이루어지고 모든 공간을 떠다닌다. 둥둥. 그리고 계속 떠다닐 것이다. 둥둥.(끝)

​사진: 홍티아트센터 출저

etc: 회사

+82-10-7212-4407

©2020 by LEEKYEONGHEE. Proudly created with Wix.com

bottom of page